나의 갭이어 이야기 3회. 언어에 대하여
전공은 영문학과지만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아 영어를 못 한다.
그런 나에게 캄보디아에서 24시간 영어만 쓰기 미션이 주어졌다
미션은 가혹했다.
단어 조합도 거의 모르는 나에게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영어를 듣고 쓰라니…
정말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는 한국에서 회화 학원을 열심히 다녔고, 학창시절부터 영어를 배워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원음과 억양, 속도감이 신세계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배려해주었다는 것을.
나는 호주와 미국에서 온 룸메이트 두 명과 방을 사용했다. 룸메이트를 포함해 몇 달간 함께 생활하는 외국인 친구가 25명 정도 됐다. 그들의 국적은 유럽, 호주, 미국, 캐나다 등 다양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아시아 국가가 없었다. 나는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영어도 최악이었다. 유럽에서는 영어가 안 통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유럽 친구들은 영어를 아주 잘했다.
내가 사는 게스트하우스는 로비가 있었고, 그 로비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잘 잡히는 곳 이었고, 식사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하러 혹은 놀러 나가는게 아니면 덥고 습한 방을 피해 너 나 할 것 없이 로비에 모였다.
로비에 모이면 자연스레 모여들어 이야기를 했다. 다들 낯선 환경에 비슷한 시기에 와서 같은 일을 하기에 이야기 거리는 넘쳐났다. 자연스레 나도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했다. 하지만 나는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받는 대화만 했다. 말하는 속도에 맞춰서 듣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도 좋은 친구들을 만났기에 나를 배려해 대화 속도를 늦춰서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그 속도로 느껴졌던 나는 그런 배려가 더 힘들었다. 또한 나를 생각해서 외국친구들이 말을 많이 걸어주었다. 그 때마다 겨우 겨우 단어 몇 개를 조합해 대답했다. 그래서 모든 대화는 금방 끝나곤 했다. 질문이 오는 경우도 가급적 피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만큼 실력이 따라오지 못했고, 유창한 영어가 난무하는 대화에서 못하는 영어를 쓰기가 민망했다. 평소에 친구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활발하게 무언가를 같이 하기 좋아했던 내가 말을 못하니 얼마나 서럽던지. 지금 주어진 상황만으로도 힘든데 가장 중요한 언어가 안 되니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같이 놀러가도 언어가 안 되니 불편하기만 하고 재미도 없어서 자연스레 놀러가지도 않고 로비도 나가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 일을 하는데도 고통이 따라왔다. 파트너와 의사소통이 안되다 보니 준비하고 진행하는게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중,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답답함에 욕이란 욕은 속으로 수 십 번 외쳤지만 그럼 뭐 하나 싶었다.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다! 어차피 영어는 내 모국어도 아니고!! 영어를 하는 거 말고도 바디 랭귀지가 있는데!! 뭐 하려 영어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그래서 그 때부터 진짜 막 뱉었다. 운이 좋게도 좋은 룸메이트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언제나 밤에 놀러 나가는 자리가 있으면 룸메이트들이 나를 챙겨 주었다.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따로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조언도 해가면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대화 속도를 늦추어 주었고, 내가 영어를 하다가 틀린 게 있으면 잠들기 전에 고쳐주었다.
점차 영어를 쓰는데 있어서 요령이 생겼다.
첫번째, 호응하는 법을 배웠다.
말을 못하니 관찰을 주로 했었는데. 외국친구들이 대화하는데 있어서는 특유의 추임새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추임새가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 룸메이트한테 물어보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느정도 주고 받기가 쉬워졌다. 그리고 대화의 반은 호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번째, 이해가 안 되면 물어봤다.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다. 잘 못하는게 당연했다. 그 많은 국가의 애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어는 나만 할 줄 알았다. 그러니 영어 하나 못 하는게 부끄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메모해가면서 외웠다. 나중에는 그게 쌓여서 점차 이해 하는게 쉬워졌다.
세번째, 바디랭귀지의 힘은 위대했다.
문화마다 차이는 있지만 바디랭귀지는 비슷하다. 왠만한 표현은 제스쳐로도 설명이 된다. 오히려 대화하는데 있어서 바디랭귀지는 분위기를 더 유머스럽게 풀어주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문화마다 다른 바디랭귀지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이는 곧 바로 좋은 대화거리를 선사해주었다.
네번째, 기기 사용하기.
핸드폰 하나면 대화는 된다. 어떻게든 된다. 사진을 보여주고, 유튜브를 이용해서 동영상을 보여줘도 된다. 모르는 건 검색해서 찾아서 이해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이 쉬운 방법 하나를 생각 못했었다. 오직 대화에만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말로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얼마나 맘도 편하고 대화하기도 쉽던지.
마지막은 진짜 그냥 막 말하기.
물론 이건 내가 인복이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아니면 다들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랬는지 배려심과 인내심, 봉사정신이 투철했다. 어쩄든 정말로 나는 운이 좋았다. 대화를 하기 전에 내가 지금 영어를 잘 못하니깐 알아서 잘 들어 달라고 말하고 시작하면. 진짜로 알아서 잘 들어주었다. 말도 안되는 문장들을 정말로 일단 뱉고 봤던 내 영어를 어쩜 그렇게 잘 알아 들어 주었던지. 그리고 그 뿐 아니라 더 쉽게 영어를 쓰도록 배려해준 덕분에 나중에는 영어 쓰는게 재미있기까지 해서 나는 결국 수다쟁이가 되었다.
예전에 영어 잘 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친구는 영어는 그냥 대충 대충 막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된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원래 그 친구가 똑똑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똑똑하지 않은 내가 되다니.
정말로 영어는 대충대충 막 하다 보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영어에 재미를 붙이고, 점차 문장을 다듬고 억양을 다듬고 눈떠서 눈 감을 때까지 쓰다 보니 듣기까지 됐다.
생각보다 언어의 힘은 크다. 하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는 더 크다. 언어를 잘 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냐의 차이였다. 같이 놀러가도 언어가 안되니 불편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가 아니라 그것을 소재 삼아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나는 한국어로 친구들한테 장난을 치고 친구들은 자기네 말로 장난을 치면 되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른 외국어도 재미있게 배우고 더욱 신나게 놀 수 있었다.
일을 하는데도 따랐던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파트너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언어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사실 내가 일 준비를 제대로 안 한 것 뿐 이었다. 일은 내게 주어진 준비만 잘하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언어는 항상 부차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너무 큰 비중을 두었었다.”
영어를 무조건 잘 해야 어떤 것이든 잘 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잘 해서 나쁠 건 없지만. 너무 그 영어라는 틀에 갇혀서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방에 틀어박혀 드라마만 보게했던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뭐든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가에 상황은 바뀔 수가 있었는데.
영어라면 피하고 싫어하고 꺼려했던 상황을 뒤집어서 내가 진짜로 재미있게 만들기 시작하면 그만이라는걸 알고나니 그것도 나름대로 신세계였던지라 그 뒤부터는 정말로 신나게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졸지에 전혀 예상에 없던 어학연수를 받게 된 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룸메이트들에게 오리지날 영어 어학연수를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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